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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spsce 1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만, 백스페이스가 뒤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전거 소리에 마음이 더부룩해졌고. 물이 새는 소리가 옆으로 나란히 들린다. 취약함과 경박함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물이 떨어지는 곳 위로는 철제 계단이 아래로는 철제 하수구가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절망적인 그곳에서 아주 조악스럽게 그리고 아주 치열하게 물방물들이 소리를 낸다. 그것들이 철제 하수구에 부딪혀 튕겨져 나간다. 매일 매 순간 다른 모양새와 질감으로 나에게 호소한다. 도시와 젊은이들의 소리에 묻혀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면서도. 그러게, 참 멈추지 않는다. 2 목구멍까지 울분이 차오른다. 그것은 울분인가 전율인가 연민인가 아픔인가 분노인가 황폐하도록 쓸쓸한 밤이 찾아오면 당신은 또 다시 ..
우노 방 안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에 있었던 것들은 떠나갔고 떠나간다. 있었던 것들이 사라진 곳에는 냉기가 감돈다. 나는 텅 빈 공간의 구석에 웅크려 울지 않는다. 이따금씩 몰려오는 텅 빈 공기가 허파에 찰 때면 눈을 감고 음미한다.
선을 긋는 것에 대하여. 선을 긋는 것에 대하여. 당신들은 얼마나 정직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까? 나는 얼마나 또 정직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까? 선을 그을 때 경계하고 주시하며 그읍시다. 이건 우리끼리 약속이에요 우직하고 정직하게 선을 그읍시다.
무한히 확장하는 검정에서 발가벗은 채로 유영을 했어 무한히 확장하는 검정에서 발가벗은 채로 유영을 했어 앞과 뒤의 경계가 사라지고 전과 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검정 속에서 몸을 띄우고 유영을 했어 눈물은 떨어지지 않고 가늘게 흘러 원형의 형상을 만들고 그 사이를 현악기의 화성음이 통과해. 짙게 깔린 현소리 위로 단선음의 오보에 소리가 이야기를 속삭이지. 중력의 추는 나를 잡아당겼고 그에 반하며 나는 계속 유영했어. 겹쳐지는 음악소리에 쓴 눈물을 훔치며 나는 앞으로 나아 갈 수도 아래로 떨어질 수도 없는 상태로 팔과 다리를 휘저었어 내가 황홀해하던 검정은 어디에 간 거야?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던 검정은 이제 막연한 두려움이 되어 나를 발가벗기고 있어 아득한 검정 천장도 바닥도 벽도 존재하지 않는 검정 내가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는 두..
불안정을 교묘하게 속이기 불안정을 교묘하게 속이기 걸쭉함 속에 몸을 담근다 어깨에 돌을 얹고 젖가슴은 걸쭉한 액체 속에 둥둥 띄운 채로.
정직성 1 구역질이 나옵니다 수많은 냄새가 섞일 때요. 한 목소리가 나를 끌어냅니다. 그 음성이 실 같이 얇은 숨 구멍이 되어 나를 살렸습니다. 그 구역질 나는 냄새 속에서요 역겹습니다. 스스로 증오하지 않으려면 끝까지 살아야합니다. 진실하게 정직하게 2 묻습니다 너는 앙상했니 너는 앙상했니 너는 창백했니 되묻습니다. 너는 온전히 너를 갈고 부숴지도록 몰두했니 그 무언가에 그래서 앙상해졌니 창백해졌니 안쓰러운 겉모습을 가지게 되었니? 고귀한 에너지를 받기에 나는 너무 나른합니다.
악취 풍기는 살의 틈새에서도 풀은 자란다. 그들은 우스꽝스럽지만 노련하다. 다음의 행성에서는 노련한 짐승만이 살아남는다. 아. 우습게도 우스꽝스러움을 노련함이 덮을 수 있다. 특권. 그렇다면 우스꽝스럽기만 한 짐승은 다음 행성에서 어찌 살아나갈까. 그저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구간에 남겨지는 것이다. 우꽝. 우꽝의 구역. 위로 아래로 투명한 막이 설치된 우꽝에서 살아간다. 우꽝의 그들은 멀끔하고 부지런하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진짜 우스꽝스러운 것일까 명석함 정직성 그들끼리는 자신들의 우스꽝스러움을 공유하며 한탄하고 비참해하고 더러는 웃겨하며 배를 까뒤집고 웃어댄다. 새로 얻은 먹이가 모두 짓눌려도 길을 잃거나 제 친구가 발을 헛디뎌 풀숲으로 굴러떨어져도 깔깔 웃어댄다..
현악기 소리가 부유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건 그랬다. 현악기 소리가 부유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건 그랬다. 1 빠른 걸음과 현악기 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어울려서 계속해서 어그러졌다. 너무도 죽이 잘 맞으니까. 현악기 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자꾸만 무너뜨렸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겨놓는데 그 소리가 또다시 발목을 잡는다. 너무나 딱 맞아떨어져서. 빠른 걸음을 걸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현악기 소리가 멈추면 이 심장이 멈출 게 너무도 빤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오가는 차들을 쳐다보지 않고 초점 없는 눈으로 현악기만을 쫓아 빠르게 걸었다 막을 겨를은 없었다. 그래서 그랬다. 끊기지 않는 현악기의 급박한 선율은 끝내 숨을 거두어갔다. 그다음. 2 계단을 오르기엔 너무나 버거워서 온몸의 무게를 실어. 숨이 차. 도착한 높은 평지에선 번쩍이는 ..
exit 1 과 9 9개의 비상구 표시가 달려있는 공간에 갇혀 또다시 생각한다. 이것이 멈추어지려거든 내가 무엇을 내주어야 하나. 미련이 없어 모든 걸 가져가세요. 빌고 또 빈다. 누구에게 믿을 것이 없어 미련하게도 내 살덩이를 붙잡고 빈다. 무미건조한 말들 틈으로 애원이 섞여 들어간다. 빌어. 빈다. 이 몸을 어쩌지 못하고 스스로를 꼬울 수 있는 만큼 꼬아 수축시킨다. 온몸 틈새에 존재하는 공기를 모두 다 빼버리자. 숨을 멈춘다고 이 안의 공기가 빠질까. 엉덩이에 발가락을 묻고 가슴에 코를 묻고 배에 팔다리를 묻었다. 흘러내리는 하나의 살코기가 된 채로 이리저리 눈만 껌뻑 껌뻑. 내가 희망을 줄 이유는 딱히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살덩이의 견해. 꼬여 뭉친 살덩이들은 풀릴 줄을 모른다. 그 상태 그대로 천천히 밖으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