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비상구 표시가 달려있는 공간에 갇혀 또다시 생각한다. 이것이 멈추어지려거든 내가 무엇을 내주어야 하나. 미련이 없어 모든 걸 가져가세요. 빌고 또 빈다. 누구에게
믿을 것이 없어 미련하게도 내 살덩이를 붙잡고 빈다. 무미건조한 말들 틈으로 애원이 섞여 들어간다.
빌어.
빈다.
이 몸을 어쩌지 못하고 스스로를 꼬울 수 있는 만큼 꼬아 수축시킨다.
온몸 틈새에 존재하는 공기를 모두 다 빼버리자.
숨을 멈춘다고 이 안의 공기가 빠질까. 엉덩이에 발가락을 묻고 가슴에 코를 묻고 배에 팔다리를 묻었다.
흘러내리는 하나의 살코기가 된 채로 이리저리 눈만 껌뻑 껌뻑.
내가 희망을 줄 이유는 딱히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살덩이의 견해.
꼬여 뭉친 살덩이들은 풀릴 줄을 모른다.
그 상태 그대로 천천히 밖으로 나가본다.
혹시 모르니까.
차에 치여 이 몸의 공기가 다 빠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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