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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하지 못하면 인간은 죽어

a386408

 

 

a386408 은 이윽고 몸의 구분이,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실제 그럴지도 몰라서 그는 자신을 들여다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슴은 배꼽을 향해 점점 처져가고 배는 그 처짐과 비례하여 점차 부풀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둘은 하나가 될 것이다. 배에 젖꼭지가 달리게 되리라.

목과 어깨도 사정이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더 이상 자신에게 '목'이라는 부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감각과 생각은 점차 그 범위를 확장시켜 그를 압박했다.

이제 그의 몸은 몸뚱이에서 과도하게 삐져나온 팔과 다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위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그것이 실제인지 망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이 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너무나 귀중했다.

이내 모든 게 잠잠해졌다. 급하게 찾아와 그를 툭 치고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드디어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가 사라졌다고 감각이 사라졌거나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예민해졌을 것이다. 그래, 그는 전보다 몇십 배는 더 예민하고 세밀해졌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부터 거슬렸던 격자의 검정 창틀을 바라본다.

그의 동공에 창틀 너머의 풍경이 서서히 비쳤다.

창밖에서는 나뭇잎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다.

다시 자신에게로 의식을 가져온다. 점차 호흡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숨이 가쁘지는 않다.

이런! a386408.

그는 머지않아 호흡을 멈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답답함을 탈출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숨을 얕게 내뱉어 본다. 문득 왼쪽에 달려있는 유방을 잘라다가

집 근처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의 한 나무 밑에 묻고 싶어 진다.

창밖을 보니 이번엔 바람이 좀 더 세차게 부는지 나뭇잎들이 주체를 못 하고 몸뚱이를 흔들어 댄다.

숨이 멎기 전, 계획한 일을 마칠 수 있을까? 

더 이상 생각할 시간도, 지체할 시간도 없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니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

a386408 은 밖으로 나왔다. 단도로 왼쪽 유방을 도려 낼 셈이었다.

아직 숨이 가빠지지 않았으니. 그 정도의 시간은 허락되겠지

 

이 질긴 살덩이를 회처럼 떠낼 것이다.

a386408은 반복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낱말들을 읊조리며 적당한 공간을 찾는 중이다.

 

 

 

201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