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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하지 못하면 인간은 죽어

핀을 꽂고, 점도 찍고 급하게 숨을 몰아쉽니다.

아무런 단초도 주지 않은 채 예고 없이 방문한,

제 구멍들을 파고드는 소리에 저는 지금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변해버린 소리에 의해 좀 먹히고 있는 것인지, 

이 폭력적이고 예의 없는 소리들 틈으로 스스로를 파묻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고통이 느껴집니다. 아픕니다. 고통스럽고 감정 없이 눈물이 뚝. 뚝 흐릅니다.

잠영? 

그것을 하기에는 힘이 너무도 부족했습니다.

머릿속 가득 든 힘을 전달받은 몸이

그것들은 뱉어내며 힘 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제가 몸의 단 한 부위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추락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확실히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두렵습니다. 외롭고 공포스럽습니다. 

눈물은 흐르지 않습니다. 

 

 

 

이 차원에서는

구원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아요. 

구원자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만무하지요. 

그래서 그저 엎드려 숨을 참는 것으로 만족한 것입니다.

참을 수 있을 만큼

한계치까지 숨을 멈추기. 

한계점 도달. 

 

자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정체모를 이것들을 자극한 것일까요?

 

얼굴과 몸의 실핏줄이 터지고 혀가 고꾸라지고 눈알이 핑글 도는 그 찰나에

핀을 꽂고, 점도 찍었습니다.  

급하게 숨을 몰아쉽니다.

생명체도, 사물도, 물도 공기도 없는 까만 차원에 박아둔 핀이 몇 개 늘었네요.

 

이제는 압니다. 

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반복적인 소리가 거슬리지만 언젠가 잦아든다는 것을 아니까.

버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이 너무도 커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진동이 점점 더 거세어지고 격렬해지니, 주변이 몸부림을 칩니다. 모든 게 엉키고 있어요.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습니다.

그 엉킴에서 구해내야 하는 것이 있는지. 

휘날리거나 진동하거나 공명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 살핍니다.

 

그것들을 처리하려 몸 일으키기를 시도했습니다. 

갓난아기가 뒤집기를 하듯이. 

엎드린 채로 몸의 각 부위에 힘을 가득 주어. 

 

하지만 뒤집기를 성공한 후에도 

미소 띤 얼굴이나 웃음소리. 박수소리 같은 것은 부재하겠지요. 

그런 게 있을리가 만무합니다.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