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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하지 못하면 인간은 죽어

우리 내기를 합시다.

밖으로 나와 달에게 말을 걸었지 

내기를 하자고  23:28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거나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적응기간이 필요하니까. 

달에게 말을 걸었지. 

내기를 합시다 우리 24:00

 

 

 

숨이 턱 막혀 밖으로 나가선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기 시작했지. 

쓸어도 잘 쓸리지 않는 낙엽 쓸기를 포기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맨손으로 줍기 시작했어.

길가엔 아무도 없었으니 내 빗자루질 소리만은 아주 크게 울려 퍼졌겠지. 5:00

 

 

 

누웠는데 천장이 내려앉을 듯이 나를 누르려 하기에 

간신히 그곳에서 빠져나왔어. 

일어서지는 못했어 천장이 거의 이마에 닿을 듯 내려앉았거든 

옆으로 구르는 게처럼 탈출한 거야. 

그리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자문했어. 10:50

 

 

 

끝없는 어둠을 즐기지 못했을 적, 

한 구석에 웅크린 덩어리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보이지 않는 척했어 

그리고는 그 옆을 천천히 지나쳤지. 지나친 걸 후회하냐고? 

 

 

 

 

입에서 피 섞인 가래가 나오길래 

퉤. 

뱉어내고 물로 입을 헹궜어 

입을 헹구다 예상치 못하게 세면대에 걸린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몸을 봤지.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자가 얼마나 비참한 꼴이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낀 거야.

그럼에도 물론 달라진 건 없었어. 혈흔만 소매에 남아있을 뿐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배와 다리에 힘만 가득 주고

내게 허용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어. 

오르는 내내 맨발이었으니 밟히는 벌레들이 많았지. 죽은 벌레들이었을 거야.

꼭대기에 올라서 

하얀 플라스틱 의자를 가장자리에 두곤 가만히 앉아 발밑과 저 멀리를 바라봤어. 

죽은 벌레들은 배를 까뒤집고 있거나 뭉개어진 상태로 여기저기.

 

세찬 비에 점심으로 먹은 열매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물러터지고 으깨져

벌레들은 그것들을 먹거나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아래로 내려가 비를 축축이 맞으며 그것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어 빗자루질을 했어. 

 

 

북한에서 넘어온 사내는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내게 말했지. 

그러나 중국인 친구와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를 않았어. 

그는 우리 중 가장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내였어. 20:00